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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희 나이 남편 김태화 별거 카페 자녀 아들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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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희>

정훈희의 나이는 1951년 5월 11일생으로 72세이며 고향은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국적 대한민국입니다. 가족은 남편 김태화와 아들 김유진, 김진성이 있습니다. 학력은 아미초등학교, 부산여자중학교,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이며 종교는 개신교입니다. 소속사는 테이크 노트이며 1967년 노래 '안개'로 데뷔하였습니다.

 

-정훈희 과거 집안 가족

정훈희의 아버지 정근수는 피아니스트이며 작은 아버지 정도근은 피아니스트 겸 밴드 마스터 악단장입니다. 정훈희에게는 오빠 4명이 있는데 모두 색소폰이나 기타를 연주한 음악인이며 정훈희의 동생 정희택은 밴드 히식스의 멤버로 활동한 바 있습니다.

정훈희의 남편 김태화 역시 가수이며 정훈희의 조카 정재영은 가수 제이로 활동하며 히트곡 '어제처럼'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정훈희의 집안은 한 마디로 음악가 집안이며 정훈희는 어린 시절 음악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훈희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67년 방학을 맞아 당시 나이트 클럽 밴드 마스터였던 삼촌을 따라가 연습삼아 서울 그랜드 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이때 이봉조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곡 '안개'를 받아 가요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정훈희 데뷔 및 활동 경력

정훈희는 1967년 노래 '안개'로 데뷔하였습니다. 이 곡은 단편 소설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안개'에 삽입되면서 인기를 끌었으며 1970년 도쿄 국제 가요제에서 베스트 10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가창력을 동시에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정훈희는 아테네국제가요제에서 곡 '너'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4위에 입상하기도 했으며 1975년에는 칠레 가요제에서 곡 '무인도'로 3위 상과 최고의 가수상을 동시에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훈희는 1975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면서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1979년 제 20회 필레가요제에 다시 출전한 정훈희 이봉조 콤비는 이종택이 작사한 '꽃밭에서'를 스페인어로 번안한 '오늘처럼 아름다운 날'을 불러 최우수 가수상을 수상하였고, 이에 한국 당국에서는 국위를 선양한 대마초 연예인에 대해 선처를 베푼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정훈희는 대마초 혐의가 풀려 유일하게 훈방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대마초 가수라는 낙인으로 인해 정훈희는 더이상 활동이 어려워졌고, 그 시기에 한 극장에 공연을 하러 갔다가 한 스토커로부터 얼굴을 돌로 가격 당하면서 코뼈가 내려 앉고, 아직까지도 흉터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당시 스토커는 정훈희의 얼굴을 망가뜨리면 자신과 결혼하게 될 거라는 생각으로 일을 저질렀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정훈희는 1975년부터 5년 동안 활동을 쉬게 되었고, 1981년 규제가 풀리게 되면서 1982년 '꽃밭에서'를 발표하여 정훈희는 제 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정훈희는 가수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과 함께 쎄시봉 무대에 오른 유일한 여가수이기도 하며 정훈희의 대표곡으로는 꽃밭에서, 무인도, 꼴길, 안개, 연가, 스진나 등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헬로트로트, 불후의 명곡, 쇼퀸 등 각종 예능에 출연하여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훈희 결혼 남편 김태화 자녀

정훈희는 1979년 가수 김태화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남편 김태화는 1950년 10월 4일생으로 73세이며 정훈희와는 2살 나이 차이가 납니다. 김태화는 1970년대 유명했던 록스타로. 미 8군에서 주로 활약했던 라스트찬스라는 그룹 사운드의 보컬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정훈희는 남편 김태화를 공연장에서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요. 두 사람은 이후 임숙희의 소개로 정식으로 만나게 되었고, 결국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동거를 먼저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정훈희는 김태화와 연애를 시작하니 헤어지기 싫고, 음악적인 부분이 나무나도 잘 맞아서 은근슬쩍 방 하나를 얻어 먼저 동거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당시 이미 인기 스타였던 두 사람은 데이트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고, 두 사람 모두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만날 장소도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정훈희가 친구로부터 방을 하나 얻어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훈희는 인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1979년 김태화와 약혼을 하게 되지만 집안의 반대 등의 이유로 헤어지게 되는데요. 이후 재회하여 동거를 하면서 첫째 아들 김유진을 낳았고, 아들이 3살 때 혼인 신고를 하고 동거 3년 만에 작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후 1989년 둘째 아들 김진성을 임신하게 되면서 정훈희는 만삭인 상태로 김태화와 듀엣곡 앨범 '우리는 하나'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정훈희는 결혼 후 연예계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고, 간간이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했다고 하는데요. 시어머니와는 고부간의 갈등 없이 잘 살았지만 남편 김태화의 바람기 때문에 적잖은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김태화는 가만히 있어도 여자가 줄줄 따랐다고 하는데요. 정훈희를 대신해 시어머니가 아들을 혼냈다고 하네요.

 

정훈희는 갱년기 증상 때문에 김태화와 한때 이혼 위기를 겪기도 했는데요. 정훈희 김태화 부부는 별거를 시작하게 되었고, 따로 사는 것이 너무 편하다고 합니다. 주위에서도 부러워 할 정도라고 하네요.

두 사람은 별거를 하게 되면서 이혼설이 돌기도 했으나 사실이 아니며 나름대로 만났을 땐 재밌게 놀다가 딱 헤어져서는 각자 볼일을 본다고 합니다. 실제로 정훈희는 서울 집에서 90세가 된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고, 남편 김태화는 부산 해운대 달맞이에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별거중이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김태화는 결혼 25년이 지나면서 전보다 더 자상해지고, 아내의 소중함을 느껴 선물공세로 사랑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2008년에 데뷔 40주년 기념앨범을 내기도 했으며 이 기념 앨범은 독집으로 30년만의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정훈희와 김태화 두 사람은 결혼 후 아들 김진성과 김유진을 낳아 슬하 두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두 아들은 정훈희와 함께 예명 김대한, 김민국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2001년에는 정훈희와 함께 음원 '우리집 하루'를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첫째 아들 김진성은 군입대를 했을 때 엄마의 군 위문 공연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며 둘째 아들 김유진은 정훈희와 2008년 데뷔 40주년 기념공연 무대에 함께 오르기도 했습니다.

한편, 정훈희 김태화 부부가 부산과 일산에 열고 있는 카페는 각자의 음악 놀이터라고 하는데요. 정훈희 라이브카페 '꽃밭에서'는 고향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부부가 함께 운영하다 이후 정훈희만의 놀이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일산에 오픈한 카페 '마스크'는 남편 김태화의 놀이터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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