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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 나이 전남편 집 엄마 이혼 사유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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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

김청(본명: 안청희)은 1962년 6월 1일생으로 나이 63세이며 고향은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습니다. 키 162cm, 몸무게 42kg, 혈액형은 B형입니다.

학력은 동구여자중학교와 선화예술고등학교 무용과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에서 무용학을 전공했으나 중퇴하였습니다. 종교는 개신교입니다. 가족으로는 어머니 김도이가 있습니다. 김청은 1981년 MBC 1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여 연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김청 과거 집안 가족

김청의 어머니 김도이는 17살에 김청의 아버지를 만나 임신 후 미혼모로서 김청을 낳았습니다. 김청의 아버지는 육군 중사였고, 김청이 100일 때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이후 김청의 어머니는 시댁에서 김청을 빼앗으려 했고, 시집살이를 하며 김청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결국 외갓집의 도움 덕분에 김청은 풍족하게 자랐습니다. 김청의 어머니는 혼자서 김청을 키우면서도 어려움을 극복했으며, 아버지와의 '영혼결혼식'을 올린 후 그의 유골을 강에 뿌렸습니다.

김청은 출생신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12년 후 큰아버지가 신고해 주었으며, 22년 뒤인 1996년에 아버지의 성인 안 씨를 찾으며 본명이 안청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청의 어머니는 김청이 19세일 때 30억 원의 빚을 지게 되었고, 김청은 이를 대신 갚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81년 미스 MBC 2위로 연예계에 입문해 돈을 벌기 시작했으며, 1987년 드라마 '사랑과 야망'으로 큰 인기를 얻어 빚을 모두 갚았습니다. 

김청은 "보증을 잘못 서서 빚을 지고 생활이 어려웠다"라고 하며, 채권자들이 방송국에 자주 찾아와 강압적으로 갚을 날짜를 요구했다고 전했습니다. 빚을 갚으면서도 삶의 의미를 잃고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결국 모든 빚을 갚고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김청 데뷔 및 활동 경력

김청은 1981년 미스 MBC 선발대회에서 준미스로 선발된 후, 같은 해 MBC 14기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드라마 전원일기, 수사반장, 은장도, 조선왕조 오백 년, 겨울꽃, 사랑과 야망, 모래성, 3일의 약속, 세 여인, 유산, 청춘극장, 별별며느리, 영화 애니깽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사랑과 야망에서 파트너 이덕화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고, 3일의 약속과 애니깽에서도 좋은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김청은 연기뿐만 아니라 MC로도 유명했으며, 특히 80년대 대표적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활약했습니다. 최근에는 별별 며느리 (2017)와 나를 사랑한 스파이 (2020)에 출연했으며, 이후 작품 활동은 적었습니다.

김청은 예능 프로그램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시즌3, 4에 출연하며 근황을 알렸고, 4인용 식탁, 속풀이쇼 동치미 등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김청 전남편 이혼 사유 자녀

김청은 1998년, 37세의 나이에 전남편 배준성과 결혼식을 올렸지만, 신혼여행 후 결혼 6일 만에 초고속 이혼을 결정했습니다. 배준성과는 12살 차이였고, 그는 5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사업가라고 알려져 충격을 주었습니다.

결혼 후 김청은 전남편의 도박과 여러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김청은 결혼 당시 힘든 심정에서 결혼을 결심했지만, 신혼여행에서의 실망으로 빠르게 결혼을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이혼 후 김청은 1년 반 동안 강원도의 한 암자에서 칩거 생활을 했으며, 그 시절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회상했습니다. 김청은 당시의 실수와 상처를 깊이 반성하며 자숙의 시간을 보냈고, 이후 2000년대 초반에 복귀했습니다. 그녀는 이혼 후 5년 동안 자숙하며 힘든 시간을 겪었고, 그 경험을 자신의 인생에서 큰 상처로 남겼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후 김청은 2005년 오피스텔 시공 문제로 시공사와 갈등을 겪으며 감금 폭행설, 알코올 중독설에 시달렸습니다. 이 사건은 무혐의로 처리되었지만, 정신적 충격으로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어머니와 함께 정신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사건 후 김청은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1년여 동안 우즈베키스탄에 머물며 외국인 근로자들을 돕기 위해 그들을 고향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현지에서의 고립된 생활 후, 어머니의 설득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김청은 강원도 평창에서 귀농 생활을 시작했으며, 전원주택에서 치유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자연과 함께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고, 결혼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고 합니다. "진실한 사랑을 하고 싶다"며, 나이가 들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전했습니다. 김청은 "지금까지의 일들은 나중을 위한 예행연습"이라며, 마음이 맞는 사람과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솔직한 생각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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