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양희은의 나이는 1952년 8월 13일생으로 72세이며 고향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입니다. 양희은의 혈액형 A형이며 가족은 아버지 양정길, 어머니 윤순모, 여동생 양희경, 양희정, 조카 한원균, 한승현, 남편 조중문이 있습니다. 학력은 서울재동국민학교, 경기여자중학교, 경기여자고등학교, 서강대학교 문과대학 (사학 / 학사)이며 종교는 성공회입니다. 소속사는 옹달샘엔터테인먼트이며 1971년 '아침 이슬'로 데뷔하였습니다.
-양희은 과거 집안 가족
양희은은 3녀 중 장녀로 태어났으며 어릴 적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하였다고 합니다. 양희은의 아버지 양정길은 서북청년사건때 진남포에서 단신으로 남하하였고, 육사 4기 보병장교를 거쳐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공적이 있습니다. 양희은의 어머니 윤순모는 서울예대 성악과 출신으로 과거 디자이너로 일하셨다고 합니다.
양희은은 이후 아버지가 외도를 하고 새엄마가 들어오게 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았다고 하는데요.
양희은의 아버지는 양희은이 13살 무렵이던 때에 육군 대령 예편 이후 39살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고, 게다가 어머니가 보증을 잘못서고 어머니의 양장점이 홀라당 타버리는 바람에 집안이 완전히 기울게 되었다고 합니다.
양희은은 대학시절 끼니는 물론이고 교통비조차 없어서 걸어 다녔을 정도로 심한 가난을 겪게 되었다고 하네요.
양희은은 맏이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19살 때부터 가수 일을 해야만 했고, 당시 가수 송창식에게 자신을 무대에 올려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되는데요.
사람 추천 안 하기로 유명한 송창식은 처음으로 명동의 맥주집에서 자신의 공연시간 중 일부를 떼어주어 어린 양희은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합니다.
-양희은 데뷔 및 활동 경력
양희은은 1971년 대학교 1학년 때 첫 정규앨범을 발표하며 데뷔하였습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 '아침 이슬'과 '세노야'는 훗날 양희은의 대표곡이 되었습니다.
양희은의 노래는 당시 군부독재로 억압받는 시대상황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의해 민주화에 어울린다고 해석하여 많이 불렸으며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곡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침 이슬'은 금지곡이 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양희은은 1975년에 정부에서 수여하는 대한민국 가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양희은은 1981년 한국을 떠나 1년간 미국과 유럽 등을 여행하고 돌아왔지만 이듬해인 1982년 난소암 진단을 받게 되면서 투병 생활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는데요.
양희은은 어릴 적부터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로 대학 시절 공부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졸업하기까지 8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20대에 집안 빚을 갚고, 두 동생을 대학 보내고 시집가는 것까지 보느라 월급을 만져본 기억이 없다고 합니다. 힘들어서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양희은은 삼십 대가 되자 난소암이라는 큰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양희은은 난소암 말기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다행히 동생과 식구들의 정성어린 간호로 병을 치료하는 데 성공하였고, 다시 가수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양희경의 금지곡들은 1987년 6.29 선언 직후 대부분 해금되면서 뛰어난 뮤지션으로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양희은의 대표곡으로는 아침이슬, 작은 연못, 한계령, 상록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내꿈을 펼쳐라, 하얀 목련, 슬픔 이젠 안녕, 님찾아 아리랑, 엄마가 딸에게, 내가 전에 말했잖아요 등이 있습니다.
양희은은 가수 활동 외에 데뷔 초부터 CBS, TBC 등에서 팝 음악방송 DJ를 맡았으며 1999년부터 지금까지 MBC 표준 FM '여성시대 양희은, 김일중입니다' 라디오 DJ로도 활동중입니다.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양희은 결혼 남편 조중문 자녀
양희은은 남편 조중문과 1987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남편 조중문은 1949년생으로 양희은과는 3살 나이 차이가 나며 직업은 사업가로 미국 맨해튼에서 직원 18명이 일하는 대형 슈퍼마켓 사장이었습니다.
양희은은 난소암 치료에 성공한 이후 다시 가수로 복귀하였고, 이후 1987년에 우연히 뉴욕의 한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다가 남편 조중문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3주만에 결혼에 골인하였는데요. 당시 양희은은 36살이었으며 남편 조중문은 39살로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이민을 간 상태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서로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고, 초등학교 때 짝꿍 좋아하듯이 동시에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특히 남편 조중문은 양희은의 솔직 당당한 매력에 반하였고, 양희은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남편에 대한 환상이 컸다고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1987년 만난 지 3주 만에 결혼식을 올렸고, 양희은은 미국에서 평범한 주부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양희은은 신혼 생활을 보내던 중 1989년 다시 난소암이 재발하게 되는데요.
1982년 처음 수술했을 당시 한쪽을 남겨두었던 자궁 쪽에도 문제가 생겼고, 양희은은 난소암 진단 이후 두 번의 수술을 받고 자궁을 드러내게 되면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녀도 없는 미국 생활에 권태로워졌고, 순탄치 않은 이민 생활이었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양희은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확실히 깨달았다고 하는데요. 결국 남편 조중문은 아내 양희은을 위해서 1993년 미국에서의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귀국 후 한국에서 행복하게 생활하던 중에 남편 조중문에게 병마가 찾아오게 되는데요. 병이 찾아오기 6개월 전부터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 양 발바닥이 바늘로 쑤시듯 아픈 전조증상이 있었지만, 운동이 과해서 라고 생각해 지나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갑자기 손목 통증이 심해져 티스푼 하나도 들어 올리지 못할 정도로 심해졌고, 남편 조중문은 급성 다발성 류마티스성 관절염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진통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어 통증 완화를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데일 정도의 뜨거운 물에 통증 부위를 담그는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남편 조중문은 밤새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뺐다 반복하며 지옥 같은 밤을 보내야 했고, 그런 남편을 지켜보며 양희은은 일을 접고 남편을 간호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관절염의 권위자 재미교포 의사 김문호 박사와 인연이 닿게 되면서 한 달 동안 치료를 받게 되었고, 김문호 박사가 출국한 뒤에는 추천해준 후배에게 치료를 받아 차츰 걸을 수 있게 되면서 1998년 여름 마침내 일상생활이 가능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양희은은 난소암으로 인해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었지만 현재 남편과 함께 강아지들을 자식 삼아 키우며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양희은은 방송인 김나영과 모녀 사이로 지낼 정도로 가깝게 지내고 있는데요. 두 사람은 2003년 연예프로그램 리포터 인터뷰를 통해 만나게 되었으며 김나영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양희은을 어머니라 생각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양희은은 2014년 ‘나영이네 냉장고’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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