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

남진 나이 아내 부인 강정연 딸 아들 가족 자녀 윤복희 이혼 이유

반응형

남진

남진의 본명은 김남진입니다. 나이는 1945년 9월 27일생으로 79세이며 고향은 전라남도 목포시 창평동입니다. 남진의 키 174cm, 혈액형 O형이며 가족은 아버지 김문옥, 어머니 장기순, 슬하 1남 3녀가 있습니다. 학력은 목포북교초등학교, 목포중학교, 목포고등학교, 서라벌예술대학 (중퇴),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연극영화학 / 학사)입니다. 종교는 개신교(예장합동)이며 군대는 대한민국 해병대 제2여단 병장 만기전역 (병 204기)입니다.

 

-남진 과거 집안 가족

남진은 아버지 김문옥과 어머니 장기순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50살에 낳은 늦둥이라고 합니다.

남진의 아버지는 제5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문옥으로 목포간이상업고를 졸업했습니다. 아버지는 쌀장사를 시작해서 성공하였고, 목포에서 제일 큰 도정공장 남일정미소를 운영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는 전남 곡물협회장과 전남정미주식회사 사장을 지냈으며 광복 후에는 대한 식량공사 전남지부장, 목포상공회의소 회장, 목포일보 사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남진이 초등학교 때 조병옥, 신익희, 장면 등의 정치인들이 집으로 종종 찾아왔었다고 하는데요. 중학교 때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목포에 오게 되면 아버지 집에 인사를 드리러 찾아왔었다고 합니다.

남진은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연극과 음악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이후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목포고등학교 시절 레스토랑에서 팝송을 부르다가 그곳에서 밴드 마스터에게 가수 제의를 받았다고 합니다.

남진은 처음에 영화배우를 꿈꾸었지만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이후 1965년에 '서울 푸레이보이'라는 곡으로 첫 음반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남진 데뷔 및 활동 경력

남진은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큰 반응을 얻지 못했고, 이후 발표했던 '연애 0번지' 마저 노래 제목 때문에 국가 금지곡으로 처분되어 실패하였습니다.

이후 목포로 낙향하여 슬럼프에 빠져 살던 남진은 '울려고 내가 왔나'라는 트로트곡을 제의받게 되는데요. 마지못해 녹음을 마쳐 앨범 마지막에 싣게 되었고, 이 곡이 대히트하게 되면서 남진은 대중들에게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습니다.

남진은 준수한 외모와 감미로운 목소리로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 불렸고,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최초의 오빠부대를 만들어 냈는데요.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남진은 1969년에 해병대로 입대를 하였고, 2년간 베트남 파병생활을 하였습니다. 원래 1년간 파병을 가기로 하였으나 당시 우리나라 동료 대한남아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2년간 파병생황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는게요. 당시 베트남에서 몇번의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고 하네요.

 

남진은 제대 후에도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갔으며 남국인과 손을 잡고 '님과 함께'를 발매해 이 곡은 남진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남진은 라이벌 가수 나훈아와 함께 한국 가요계에서 아이콘으로 자리잡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현재까지도 꾸준히 활동 중인 대한민국 가요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진은 트로트, 로큰롤을 오고 가면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냈으며 영화배우로도 활동했습니다.

남진의 노래로는 님과 함께, 그대여 변치 마오, 빈잔, 둥지, 울려고 내가 왔나, 가슴 아프게, 마음이 고와야지, 미워도 다시한번, 당신이 좋아, 사치기 사치기, 너는 나만 믿고 따라와, 남자다잉, 오빠 아직 살아있다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했습니다.

남진은 후배 및 동료가수들의 권익보호에도 관심이 많아 대한가수협회 1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연예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보이스트롯, 트롯전국체전, 현역가왕 등에 출연해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하였습니다.

 

-남진 결혼 아내(부인) 자녀

남진은 1976년에 가수 윤복희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혼 3년 뒤인 1979년에 이혼을 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이혼 사유에 대해 윤복희가 밝힌 바에 따르면, 윤복희는 남진과 결혼하기 전 첫사랑이었던 가수 유주용과 결혼 후 미국에서 생활하며 가정에 충실하려 했지만, 남편 유주용은 자신보다 인기가 많은 윤복희가 일을 계속 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유주용은 윤복희의 매니저 일을 자처하였고, 윤복희는 남편이 점차 약해져 가는 모습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윤복희는 1975년 공연 때문에 한국에 입국하게 되는데 이때 남진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고, 남편 유주용이 윤복희의 스캔들로 힘들어하자 자신을 믿지 못하는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어 홧김에 이혼을 하고 남진을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랑하지도 않은 남진과의 결혼 생활이 행복할리 없었고, 윤복희는 결혼 6개월 만에 남진에게 결혼반지를 돌려주고 서로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윤복희는 이후 남진의 사랑을 이용했다는 점에 대해 미안한 심경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남진은 윤복희와 이혼 후 미국으로 떠나 지금의 아내 강정연를 만나게 되는데요. 남진의 아내(부인) 강정연은 재미교포로 미국에 공연을 가서 선배의 소개로 남진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진은 강정연과 1980년 혼인 신고로 부부가 되었고, 미국에서 딸 3명을 낳은 뒤, 넷째 아들을 가져 만삭일 때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이후 막내 아들이 태어나며 슬하 1남 3녀를 두고 있습니다. 남진의 첫째 딸 홍미는 방송에 출연해 연예인급 외모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첫째 딸과 아들은 결혼을 하였고, 둘째와 셋째는 아직 미혼이라 같이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