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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

전원주의 나이는 1939년 9월 20일생으로 85세이며 고향은 경기도 개성부 (現 개성시)입니다. 전원주의 키 150cm, 몸무게 51kg, 혈액형 AB형이며 가족은 남편 임진호, 아들 2명이 있습니다. 학력은 만월국민학교 (중퇴), 덕성여자고등학교,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 / 학사)이며 종교는 불교입니다. 1960년 CBS 성우극회 5기 공채 성우로 데뷔하였습니다.

 

-전원주 과거

전원주는 개성에서 인삼농사를 크게 짓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980년 6.25 전쟁으로 피난을 가게 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한동안 어려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전원주는 만월국민학교를 다니다 5학년 때 피난 생활을 하면서 중퇴하여 졸업을 하지 못했고, 학교에서 성적이 좋았으나 학업을 포기하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집안 형편이 조금 나아져 교장선생님에게 사정을 하여 중학교 2학년으로 편입했고, 덕성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요.

전원주의 어머니가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사업을 크게 해서 큰돈을 벌게 되었고, 자식 공부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전원주는 이후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영화와 드라마에 열중하면서 졸업을 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전원주는 과거 잠깐동안 국어 교사로 일하기도 했지만, 키가 너무 작아 칠판에 글씨를 쓰기가 힘들었고, 작은 키 때문에 학생으로 오인받아 학생주임에게 뺨을 맞는 해프닝을 겪은 후, 이 일을 계기로 교직을 떠나 성우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전원주 데뷔 및 활동 경력

전원주는 1960년 CBS 성우극회 5기 공채 성우로 데뷔하였습니다. 전원주는 성우로 활동할 당시에 비중 있는 역할을 자주 맡으며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요.

특히 애니메이션을 통해 활약했으며 대표적으로 ‘아기공룡 둘리’, ‘헬로카봇’, ‘뽀로로’, ‘코코몽’, ‘포켓몬스터’ 등이 있습니다. 60년대 당시에는 TV 보급률이 낮아 라디오 드라마의 인기가 엄청나서 성우들의 인기가 좋았다고 하네요.

전원주는 이후 TV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로 전향하게 되는데요. 전원주는 1964년 '청춘의 노래’로 영화 데뷔를 하였으며 1965년 '사랑의 노래’로 드라마 데뷔를 하였습니다. 전원주는 영화, 드라마에서 주로 어머니나 할머니, 식모, 이웃집 아주머니 등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전원주의 출연작품으로는 대추나무사랑 걸렸네, 야곰례야, 남매, 세 남자 세 여자, 별들의 고향, 순풍산부인과, 토마토, 퀸, 여자 대 여자, 울라불라 블루짱, 고맙습니다, 미남이시네요, 황산벌, 평양성, 맏이, 선녀가 필요해, 효심이네 각자도생 등이 있습니다.

전원주는 드라마에서 성우로서 재능을 발휘해 다른 배우들의 목소리를 더빙하기도 했는데요. 드라마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도깨비’ 등의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의 목소리를 더빙하였습니다.

 

-전원주 재산 주식 건물

전원주는 연예계 대표 짠순이자 재테크의 세계에서 신으로 불릴 정도로 투자 기술과 재산 관리 능력은 매우 뛰어난데요. 주식 시장에서 우량주를 선별하여 장기 투자하는 전략을 통해 50만 원의 소액을 억대로 불려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원주는 엄청나게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선우용녀는 전원주에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전원주는 과거 어려운 형편의 신인 시절부터 돈을 악착같이 모아 현재는 서울 번화가에 위치한 여러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원주의 재산 중 부동산도 유명한데, 외환위기 당시 부동산이 폭락하였을 때 전원주는 부동산을 구매하였다고 합니다.

 

-전원주 결혼 남편 임진호 자녀

전원주는 부모님이 정해준 남자와 첫 번째 결혼을 하였는데요. 첫 남편은 영등포 일대에서 유명한 의사집안 아들로 서울대출신의 엘리트였습니다.

전원주는 당시 시대상에 맞게 부모님께서 결혼하라고 한 남편과 결혼 후 2년 만에 아들을 낳았지만 남편은 폐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사별하게 되었습니다. 남편 포함 시댁 식구 모두가 의사였는데 남편을 병으로 잃게 되었다고 하네요.

전원주는 이후 1969년 1월 두 번째 남편 임진호와 재혼을 하였습니다. 임진호는 전원주보다 10살 어린 연하남으로 친구 아기 돌잔치 때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남편 임진호는 일을 척척해내는 전원주를 보면서 '저런 여자와 살면 평생 고생은 안 하겠다.'라고 생각했고, 전원주 역시 임진호의 뛰어난 언변과 똑똑함에 마음이 끌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남편은 아들 하나를 가진 재혼남이었으며 난봉꾼으로 사업을 한다고 친가와 처갓집 돈을 탕진하고 여러 여자를 만나며 파주에 아이까지 낳아 기르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가족 부양은 전원주의 몫이었고, 억척스럽게 살며 결혼생활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두 번째 남편은 투병생활을 하다가 2013년 세상을 떠나 전원주는 또다시 남편과 사별하였고, 남편 장례식에는 남편의 여자들이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원주는 남편과 사별 후 늦게 들어와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고 밥상 안 차려도 혼내는 사람이 없어 편한 점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전원주의 두 아들은 의사와 변호사로 잘 자랐으며 전원주는 며느리와 방송에 자주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전원주는 남편과 사별 후 아들들이 같이 살자는 말을 안 해서 혼자 살고 있으며 외로움이 심해 남자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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