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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김창완의 나이는 1954년 2월 22일생으로 70세이며 고향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입니다. 김창완의 키 168cm, 몸무게 65kg, 혈액형 A형이며 가족은 아내(부인) 강귀빈, 아들 김신화가 있습니다. 학력은 서울은로초등학교, 중앙중학교, 중앙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잠사학 / 학사)이며 종교는 무종교입니다. 군대는 방위병 소집해제이며 1977년 '산울림 새 노래 모음'으로 데뷔하였습니다.

 

 

■김창완 과거 가족 집안

김창완은 어린 시절 그런대로 잘 사는 집안 환경에서 자랐지만, 과거 미 8군 군속 설계사였던 김창완의 아버지가 퇴직금 전부를 어떤 영화에 투자했다가 실패하면서 집안 환경이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의 불화가 심했다고 합니다. 김창완은 병역 면제 처분을 받았으며 집안 환경 때문인지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일을 했다고 합니다.

김창완은 2년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갔다고 하는데요. 당시 같은 동네에 함께 놀던 친구들이 김창완보다 두 살씩 많았는데 그 친구들이 학교에 입학하자 어린 김창완은 무작정 그들과 함께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게 되었고, 1년간 초등학교를 청강한 뒤, 교장의 재량으로 정식 학생으로 인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김창완이 워낙 수재였기 때문에 집에서 일찍 학교를 보냈다고 하네요.

김창완은 미술에 평범치 않은 소질을 보이기도 했으며 고등학교 때는 막연하게 미대나 음대를 가고 싶었지만, 당시 담임선생님이 서울대 농대에 원서를 넣어버리는 바람에 서울대 농과대학 잠사학과(현 바이오소재학과)에 입학하게 되는데요.

 

 

당시 고교들 사이에 서울대 진학 경쟁이 심했기 때문이며 김창완은 집안 형편상 사립대에 진학하기 어려웠기에 합격한 김에 그냥 다니자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김창완의 첫째 동생 김창훈은 용산고 서울대 농대 식품공학과 출신이라고 하며 둘째 동생 김창익은 고려대학교 공대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동생들 역시 공부를 잘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면서도 특이한 행동을 많이 하며 지낸 김창완은 대학교 1학년 때 기타를 보고 궁금한 마음에 뜬금없이 기타를 사기도 했으며 대학교 졸업식을 며칠 앞둔 시점에는 방에서 바리캉으로 머리를 싹 밀어버리고 졸업식 때 가발을 쓰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음악을 만나게 되면서 이러한 행동들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넉넉지 않았던 가정환경에서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지 않았던 김창완은 어릴 적부터 방에 계란판을 붙여 방음실로 만들고 5000원짜리 기타를 들고 와서 형제끼리 만든 곡들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나중에는 실제 악기를 다루며 본격적으로 자신들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 나갔고, 이것이 밴드 ‘산울림’ 음악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둘째 동생 김창훈이 작곡한 '나 어떡해'가 77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3형제는 록 밴드 '산울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김창완 데뷔 및 활동 경력

김창완은 1977년 '산울림 새 노래 모음'으로 데뷔하였습니다. 산울림은 1집 ‘아니 벌써’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는데요. 김창완은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동안 작곡했던 150여 곡이 아까워서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기분으로 우여곡절 끝에 앨범 한 장 내게 되었는데 이 음반이 뜻하지 않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1977년에 태어난 아이에게 '산울림둥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산울림은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며 사랑받았습니다. 

김창완은 1집에 이어 1978년 5월,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발표하여 록의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만족시킨 앨범이란 평가를 받았으며 '안개속에 핀 꽃', '이 기쁨' 등은 산울림의 사이키델릭 한 음악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문 좀 열어줘', '불꽃놀이', '안타까운 마음' 등의 곡은 하나의 문화충격이었으며 산울림은 이후 프로그레시브와 헤비메탈까지 도입하여 2집을 발표해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후로도 산울림은 너의 의미, 어머니와 고등어, 개구장이, 산할아버지, 꼬마야,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습니다. 산울림은 잠시 공백기를 가지기도 했지만 꾸준한 활동을 이어 갔는데요.

그런데 2008년 드럼을 담당하던 막내 김창익이 캐나다 밴쿠버에서 지게차 사고로 51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결국 산울림은 해체를 선언하였습니다. 김창완은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김창완 밴드를 이끌고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창완은 가수 활동뿐 아니라 연기 활동과 라디오 DJ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데요. 김창완은 1978년부터 7시의 데이트, 김창완의 골든디스크, 음악여행 라라라 등 꾸준히 라디오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1987년 5월 5일 어린이날 특집 노래극 ‘바다의 노래’를 통해 배우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은실이, 카이스트,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하얀 거탑, 별에서 온 그대, 밀회, 원더우먼, 왜 오수재인가 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여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결혼 아내(부인) 강귀빈 자녀

김창완은 1978년 11월 아내(부인) 강귀빈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아내 강귀빈은 1952년생으로 김창완보다 2살 연상이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으로 직업은 소아과 전문의로 알려졌습니다. 아내 강귀빈과 김창완과 초등학교 동창 사이로 김창완이 2년 일찍 학교를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김창완은 아내 강귀빈이 첫사랑이라고 밝히기도 했으며 두 사람은 졸업 후 서로 볼 수 없었지만 이후 대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김창완은 서울대에 다니고 있었고, 아내 강귀빈은 고려대 의대를 다니고 있을 때였는데 2학년 때 독서 모임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창완은 긴 생머리를 한 아내의 뒷모습에 다시 한번 반했고, 이후 아내와 만나기 위해 책을 빌리곤 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5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고, 결혼 후 아들 김신화를 낳아 아들 한 명을 두고 있습니다. 김창완 아들 김신화는 아빠 엄마를 닮아 굉장히 똑똑하며 현재 외국계 회사 중 하나인 구글코리아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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