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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나이 남편 아들 자녀 딸 고향 이혼 전남편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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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심수봉은 1955년 8월 28일생으로 나이는 70세이며 고향은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가수입니다. 본명은 심민경이며 혈액형 O형입니다.

가족은 부모 아버지 심재덕, 어머니 장영복과 형제자매 언니, 이부 남동생 1명, 이부 여동생 1명 그리고 배우자 김호경, 자녀 아들 2명, 딸이 있습니다. 학력은 인화여자고등학교 졸업 후 명지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종교는 개신교입니다.

심수봉은 1978년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데뷔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소속사는 라이트웨이브 엔터테인먼트와 루체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심수봉 과거

심수봉은 음악을 사랑하는 가정에서 자라났고, 아버지와 큰아버지, 고모 등도 모두 음악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심수봉은 서산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어머니의 재혼으로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이후 영등포 여중에 다니다가 건강 문제로 2년을 휴학했습니다. 심수봉은 1972년 고등학생 시절 판소리 국악소리 가로 활동을 시작한 후, 1974년 미 8군 무대에서 록 뮤직 드러머로 활동했습니다.  인천 인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의 청와대 연회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서 음반 발매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1976년, 심수봉은 남산 도쿄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가수 나훈아의 주선으로 음반 녹음을 시도했으나, 음반사와의 분쟁으로 발매는 취소되었습니다. 그 후 재수하여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고,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때 그 사람'을 부르며 큰 인기를 끌게 되어 가수로서의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심수봉 데뷔 및 활동 경력

심수봉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하여 '그때 그 사람'을 불러 큰 인기를 끌었고, 그 노래로 가수로서의 입지를 확립했습니다. 이후 '여자이니까'로 정식 가수 데뷔를 했습니다.

심수봉의 본명은 심민경이며, 가수로 성공하려면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권유로 어릴 때 스님이 지어준 법명 '심수봉'을 예명으로 사용했습니다. 대학가요제 당시에는 본명인 심민경으로 출전했으며, 데뷔 후 예명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심수봉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궁정동 안가 술자리에 초대되어 있었으나, 이날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심수봉은 강도 높은 조사와 방송 활동 금지, 정신병원 강제 입원 등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후 영화 '아낌없이 바쳤는데'에서 주연을 맡고, 영화의 주제곡을 부르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1980년에는 '순자의 가을' OST를 부르기도 했지만, 영부인의 이름 '순자' 때문에 방송 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후 1983년 후배 가수 방미가 이 곡을 리메이크하여 히트를 했고, 심수봉은 1984년 방송 금지가 해제되자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라는 제목으로 다시 음반을 발표했습니다.

1984년 가요계에 복귀한 심수봉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1985년 '무궁화'가 히트했으나 정치적 이유로 방송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심수봉은 정치적 탄압을 많이 받았지만, 그 경험을 음악에 담아 슬프고 애절한 곡들을 발표하며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1987년 '사랑밖엔 난 몰라'가 히트하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18년에는 신곡 앨범 '내 삶은 빛나기 시작했다'를 발표하고, 그 앨범에 수록된 '엄마 사랑해요'라는 곡을 발표한 후 1년 후, 심수봉의 친모가 돌아가셨습니다.

■심수봉 전남편 이혼 사유 자녀

심수봉은 두 번의 이혼을 경험했습니다. 첫 번째 결혼은 1981년에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심수봉은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한기석(한도사 혹은 심령도사)과 연인 관계를 맺고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한기석은 결혼 전 1남 1녀의 자녀를 둔 유부남이었으나, 두 사람은 결혼 후 동거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심수봉의 어머니는 이들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아 심수봉은 많은 심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결혼하고 1981년에 아들 한승현을 낳았으나, 심수봉은 아들이 태어난 지 보름 만에 갓난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심수봉은 이혼 사유에 대해 "살아보니까 저와는 인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분은 아내를 거느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며 성격 차이라고 밝혔습니다.

아들 한승현은 현재 심수봉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으며, 뛰어난 컴퓨터 실력을 바탕으로 그래픽 회사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심수봉의 곡 '심연, 그 밖으로'를 직접 작사,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결혼은 1983년, 심수봉이 3살 연상의 박진섭과 재혼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박진섭은 사업가로, 심수봉이 출입하던 밤무대의 사장이었고, 두 사람은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이들은 1984년에 딸 박성희를 낳았으나, 결혼 9년 만인 1992년에 이혼했습니다. 심수봉은 두 번째 남편과의 이혼 이유에 대해서도 성격 차이라고 밝혔습니다.

심수봉은 두 번째 이혼 후, 1995년에 지금의 남편 김호경과 결혼했습니다. 김호경 역시 결혼 전에 이혼 경험이 있었고, 심수봉과 재혼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가수 김흥국의 주선으로 인연을 맺었으며, 심수봉은 처음에 김호경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감정을 담아 '비나리'라는 곡을 부르며 청혼했다고 합니다.

당시 김호경은 라디오 방송 PD였고, 심수봉의 섭외를 위해 잘해주었는데, 심수봉은 이를 자신을 좋아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감정이 생겼다고 합니다. 또한, 김호경이 유부남인 줄 알았지만, 그 역시 이혼 경험이 있어 서로의 감정이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심수봉이 재혼했을 당시, 그녀의 아들과 딸은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을 겪었습니다. 이로 인해 심수봉은 남편 김호경과 9년간 떨어져 지내기도 했으며, 이를 통해 남편의 기다림과 인내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현재는 가족이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심수봉은 두 번째 남편 박진섭과의 이혼 후, 딸 박성희와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하지만 9년 만에 9살이었던 딸이 유모를 통해 핑클 사인을 받아 달라는 부탁을 하였고, 이를 계기로 다시 연락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딸 박성희와 다시 만나게 되었고,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박성희는 2018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심수봉 대신 대통령 표창을 대리 수상하며 소감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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